한국 중소벤처들이 사우디아라비아 신산업 시장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국영기업 아람코 산하 와에드벤처스(Waed Ventures)와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하고 투자 심의 단계로 직행한 인공지능(AI) 기업이 나온 데 이어, 일부는 현지 정부 산하 기관과 PoC(개념검증)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중동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지난 28일(현지시각) 사우디 리야드 모벤픽호텔에서 열린 '한-사우디 투자유치설명회'에서 국내 AI 스타트업 에임인텔리전스의 박하언 CTO가 현지 정부기관 및 투자사들앞에서 피칭을 하고 있다.


28~29일(현지시간) 리야드에 대부중개업 서 열린 '한-사우디 투자유치 설명회'에서 국내 기업들은 단 10분의 피칭에 기술력과 시장성을 압축해 담았다. 행사장은 긴장과 열기로 가득했고, 발표 직후 현지 정부와 투자기관들은 곧바로 상담과 협력 논의에 나섰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29곳 중 2곳은 아람코의 VC 자회사 와에드벤처스의 관심을 받아 투자 심의 단계까지 진입했다. 한 기업 평가금액 관계자는 “정부 주도 프로그램이 신뢰와 속도를 높여줬다”며 “이제 8부 능선을 넘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드론 기반 데이터 플랫폼을 제공하는 '엔젤스윙'은 사우디 국부펀드(PIF) 산하 기관과 기가프로젝트 건설현장에서 PoC를 추진하기로 했다.



생애첫주택자금대출은행 '엔젤스윙'이 이번 사업 기간동안 사우디 국부펀드(PIF) 산하 기관과 PoC를 추진하게 됐다. 피칭 다음날 엔젤스윙은 사우디 기가프로젝트 건설현장을 찾아 드론 스테이션 기반 디지털 트윈 제품을 테스팅했다. 박원녕 엔젤스윙 대표(오른쪽)가 현지 기관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엔젤스윙〉


신청교육 AI 스타트업 '다비다'는 PIF가 투자한 SICE(Social Impact Capital Education)와 MOU를 맺고 '지니티처' 솔루션 협력에 나섰다. 지니티처는 학생 필기를 실시간 디지털화하는 기술이다. 이은승 대표는 “이번 협약으로 사우디 교육 시장에서 AI 기반 자기주도 학습 솔루션 도입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SICE와 십이지장 함께 중동 교육 혁신 실증 사업을 추진하고, 사우디 전역으로 확산하겠다”고 말했다.
추가 투자 협의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스마트 호텔 통합 플랫폼 기업 '두왓'의 이찬민 부대표는 “피칭 이후 사우디 관광부에서 별도 미팅을 요청해와 추가 협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미 사우디전력공사(SEC)와 전력시설물 AI 자율점검관리 파일럿을 진행한 바 있는 '뉴럴디'의 곽지호 대표는 “다양한 기관에 사업을 소개할 기회가 주어졌고, 이번을 계기로 수출 확대와 중동시장 선점의 초석을 다지겠다”고 강조했다.
사우디로부터 이미 200억 원 투자를 받은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엄채영 리벨리온 이사는 “사우디 정부와 논의하며 보건·스마트시티 분야의 기회와 리벨리온의 제품 수요도 다시 확인했다”며 “내달 초 사우디 최대 규모의 투자포럼 'FII'에서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아 피칭을 진행한다.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기회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참가 기업들의 시선은 각기 다른 전략으로도 향했다. 생성형 AI 솔루션 기업 포지큐브는 '소버린 AI'를 내세웠다. 김은직 대표는 “사우디처럼 소버린 AI를 지향하는 국가는 글로벌 빅테크의 생성형 AI보다 독자적 솔루션에 주목한다”며 “비알파벳권 중심 AI 서비스 시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현지 안착을 넘어 본사 이전까지 고려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진출 시 흔히 부딪히는 비자 문제와 같은 불확실성을 피하고, 대신 안정적인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중동이 낫겠다는 판단에서다. 또 현지 문화가 비교적 개방적이고 술 문화와 같은 제약이 적어 업무 환경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평가되면서, 아예 본사를 옮기는 방안까지 내부적으로 논의하겠다는 계획이다.
임정욱 중기부 실장은 “3년간 사우디 투자부와의 협업이 결실을 맺어 양국 기업 협력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며 “단번에 계약까지 이뤄지긴 어렵지만 이번 설명회가 많은 기업에게 사우디 진출의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우디 측 역시 단순 투자에 그치지 않고, 한국 스타트업이 자국을 넘어 중동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사우디 투자부의 아프난 아바브타인 국장은 “기술력 뿐 아니라 비전2030과의 정합성·시장성·글로벌 확장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해외 스타트업 유치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리야드에서 열린 '한-사우디 투자유치 설명회'에 참가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병준 주사우디 대사관 대사대리는 “방문 기간 동안 사우디 정부와 공공기관이 한국 기업들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며 “이런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자는 의사도 전해왔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를 주관한 벤처기업협회는 이번 성과를 토대로 내년에는 더 다양한 업종의 국내 벤처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파견단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